반물질로 폭탄을?
[과학 칼럼] ‘반물질’과 폭탄
과학과 종교의 대립을 주제로 한 영화 ‘천사와 악마’를 보면, ‘반물질(反物質)’이라는 다소 생소한 것을 폭탄처럼 이용해 사람들을 위협하는 장면이 나온다. 반물질하면 매우 초자연적이거나 신비적인 대상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1920년대 디랙이라는 물리학자가 방정식을 통해 예견했고, 이후 실제로도 발견되었다. 즉 양성자와 질량은 같지만 음의 전하를 지니는 반양성자, 전자와 질량은 같지만 전하는 반대인 양전자 등이 바로 반물질을 이루는 반입자들이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나 미국 페르미연구소와 같은 거대한 충돌형 입자가속기 시설에는 반입자를 만들어내고 저장하는 장치와 방법이 마련돼 있다. 또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응용되고 있다. 큰 병원에서 뇌질환의 진단 등에 주로 쓰이는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PET)는 양전자와 물질 간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방사선을 검출해 영상을 만든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반물질을 이용해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거나,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개발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이나 다른 여건을 고려한다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그럴 필요성도 없다. 반양성자나 양전자 등 반입자들은 물질의 입자와 반응하면 높은 에너지의 빛을 만들면서 없어진다. 여기서 이들의 질량과 에너지 사이에는 아인슈타인이 밝힌 유명한 공식인 E=mc2의 관계가 적용된다.
만약 반물질을 대량으로 확보하고 잘 관리할 수만 있다면, 현재의 핵폭탄보다 훨씬 효율이 높은 무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은 핵분열 혹은 핵융합의 과정에서 질량 결손에 의한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한 것이므로 동일한 ‘질량-에너지 등가 공식’을 따른다. 하지만 여기서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비율은 매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입자와 반입자가 쌍소멸을 통해 에너지로 바뀌는 비율은 100%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동일한 양의 원료라면 반물질을 이용한 폭탄이 훨씬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원자력 에너지의 원료인 우라늄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지만, 반물질은 자연 상태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아 대량으로 확보하기가 극히 어렵다. 또 비용도 엄청나게 든다. 현 기술 수준으로는 물질과 반물질의 반응을 이용해 전구 한 개를 밝히는 데 드는 비용이 미국 정부의 1년 예산보다 많을 것이라 한다.
영화와 TV 드라마로 여러 차례 선보인 SF 시리즈물 ‘스타트렉’을 보면, 엔터프라이즈호라 불리는 멋진 우주전함이 매우 빠른 속력을 낼 때는 물질-반물질의 반응 엔진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온다. 우주 공간에 반물질이 매우 풍부해 쉽게 얻을 수 있다면 먼 미래에는 그와 같은 우주선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주에는 반물질이 그리 많지 않다.
천문학자들은 혹시 우주 어딘가에 반물질로만 이루어진 은하계 등이 있는지 관측하려 한 바 있으나, 아직까지 그 증거가 발견된 적이 없다. 반물질은 현대 물리학에서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지만, 이를 새로운 무기나 에너지원으로 응용하기에는 요원할 듯하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약력=서울대 물리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LG전자 선임연구원, 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중앙일보] 2009.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