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민간연구소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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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21세기를여는열쇠] 세계적 민간연구소 되려면...
뉴스제공시각 : 2001/1/29
출처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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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꾸 미국과 같이 우리와는 역사적 배경과 전반적 사정이 판이하게
다른 나라의 예만 들면서,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하느냐'는 식의 질타는 평
소에 필자로서 크게 내키지 않는 일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마땅한 `벤치
마킹' 대상을 찾기 쉽지 않은 마당에 이번에 한번만 더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다.
오늘날 미국 경제를 주름잡는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에 빛
나는 민간연구소들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은 미국 과학기술 발
전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 온 바 있다.
외형적으로도 수위를 다투면서 `경영학의 귀감'으로도 자주 거론되는 제너
럴 일렉트릭(GE)사는 바로 발명왕 에디슨의 개인연구소가 그 모태다. 몇 년
전 공룡 통신기업 AT&T사로부터 루슨트 테크놀로지사로 분리돼 나온 벨 연구
소는 물론 전화기의 발명자 벨로부터 유래된 곳으로서, 트랜지스터 등 온갖
신기술 신발명품의 산실로 꼽혀왔다. 2000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킬비를
배출한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사는 반도체기술의 대표적 기업으로 알려져왔
고, 듀폰사 중앙연구소는 노벨화학상 수상자만도 여럿 배출하면서 화학산업의
발전에 견인차가 돼왔다.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도 산하에 민간연구소들을 설립해왔고, 이
들 중 상당수는 우리 나라가 몇몇 분야에서나마 세계적 경쟁력을 갖는 제
품들을 선보일 수 있게 된 데에 나름대로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
나 과연 민간 연구소들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돼 있는지, 또한 그들이 기
대에 걸맞는 구실을 하는지는 심히 의문이다.
진정한 연구개발의 목적보다는 세금 감면 등 정부로부터의 온갖 혜택에만
눈이 어두워 설립했던 태생적 한계는 지금이라도 과연 극복됐는가.
영업이나 생산 부문에서는 연구소를 `하는 일도 없이 돈만 축내는' 집단으
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심지어 최고 경영층조차도 연구개발의 특성에 대
한 이해도 없이 기초적 투자는 소홀히 한 채 `왜 당장 히트상품을 개발해
내지 못하느냐'고 다그치지는 않는가.
그 어렵던 IMF 구제금융시대가 닥치자, 정부출연 연구기관들도 마찬가지였
지만 바로 미래의 희망이 돼야 할 연구원들이 `제1순위'로 무더기로 내몰리
지 않았던가. 미국의 대기업들이 1930년대에 세계대공황이라는 최악의 환경
에서도 고급연구인력들을 보호하고 자유로운 기초연구를 보장해, 듀폰 같은
경우 나일론이라는 빅히트상품을 결국 성공시겼던 예와는 너무도 대조적이었
다.
근대적 기업과 과학기술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 나라의 민간연구소들로서는
미국의 경우처럼 기초과학 연구까지 선도하면서 과학기술 발전에 중추적
구실을 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 기업들이 내거는 화려한 구호
들과는 달리 `무늬만' 세계적인 연구소가 되지 않으려면, 연구원 및 경영진
의 겸허한 반성과 치열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최성우/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