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표준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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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21세기를여는열쇠] 치열한 '기술표준' 전쟁
뉴스제공시각 : 2001/08/13
출처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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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기술표준' 전쟁/ 최성우
여러 분야에서 차세대 기술이 속속 선보이면서 기술표준을 둘러싼 기업·국가
들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도 서둘러 세계 표준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정 제품이나 기술이 세계 표준의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사실 기술력
못잖게 다른 여러 변수가 존재한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열등한 기술 또는
불합리한 방식이 더 나은 쪽을 누르고 표준의 자리에 오른 예도 적잖다. 기차의
레일 간격이나 컴퓨터의 자판 배열, 녹화재생기(VCR)의 표준방식 등은 그런
사례다.
이렇듯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쪽으로 급속히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 시장의
표준으로 정착하는 것은 최근의 신경제학에서도 `수확 체증의 법칙' 등과 관련해
많이 연구되고 있다. `익스플로러 끼워 팔기' 등 독과점과 불공정경쟁 여부로
논란을 빚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법정 소송에서도 큰 쟁점의 하나였다.
그동안 미국은 자국의 시장 규모와 영향력을 무기 삼아 자기네 방식을 무리하게
표준으로 만들거나 고집해온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일본과 유럽이 연합군을
형성해 미국에 대응하는 모습이 3세대이동통신(IMT-2000)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
나고 있다.
동기·비동기 진영으로 나뉜 IMT-2000 기술방식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사업자
선정원칙을 놓고 몇차례 오락가락한 적이 있지만, 세계가 동기식으로 통일되려면
미국의 위치확인시스템(GPS) 위성을 써야 하는데 `통신주권'이 미국에 종속될
우려가 있어 유럽이나 일본이 수용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각국의 이해관계
대립과 단일 기술표준 채택의 실패로 인해, 전세계 단일통신망 구축을 최대 목표
로 했던 IMT-2000의 이상은 상당부분 이미 훼손된 셈이다.
비슷한 이유로 아날로그 텔레비전에서 NTSC, PAL, SECAM 등 3개로 분할된 기술
방식은 장래의 디지털 텔레비전 단계에서도 통일을 보지 못하고 미국식, 유럽식,
일본식 등으로 분열상을 재현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우리 기업들이 제안한 몇가지 기술방식이 국제 표준의 일부로 채택되
는 등 성과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시장 규모나 기술 수준, 기타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가 기술표준의 제정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거나 세계시장의
표준을 장악하기에는 힘이 부칠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나마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최성우/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