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21 2011. 3. 3. 09:13

들어가는 말 


처음으로 과학에 관한 책을 한 권 펴낸 후, 여러 지면을 통해 과학 칼럼을 연
재하고 방송에도 가끔씩 내비치며 <과학 평론가>라는 약간 낯선 직함으로 활
동해온 지도 어느덧 3년이 되었다. 첫 졸저 '과학사 X파일'에서는 과학이 지나
온 과거를 훑어보면서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그 후 여러 신문과 잡지의 요청으로 쓴 글들은 앞으로 더욱 발전될
과학기술의 모습과 그로 인해 변모될 미래 사회 등 주로 <과학과 미래>에 대
한 조망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시기적으로 21세기라는 새 천년의 시작과 맞물려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적지 않은 미래 예측서나 관련 사회과학 서적들을 탐독할 수도 있고, 혼자서 상
상을 할 수도 있고, 주술이나 그 밖의 다른 힘에 의존하려 할 수도 있다. 미래
에 대한 예측은 낙관적일 수도, 비관적일 수도 있고, 또한 과거의 예측이 상당
히 빗나갈 수도, 놀라울 만큼 잘 들어맞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보다 과학적이
고 합리적으로 예측하기 위해 늘 노력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상
상을 한다는 점이다.
미래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도식적으로 변화한다기보다는,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바뀌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상상력은 곧 과학기술을 움
직이는 원동력이기도 하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도 어찌 보면 과거에 이
미 어느 정도 <상상된 세계>에 다름 아닌 것이다. 특히 19세기 이후 본격적으
로 선보인 수많은 SF 소설과 영화들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맞물리면서 꿈을 점
차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이 두 번째 졸저에서는 SF 속의 과학적 상상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살
고 있는 첨단 과학의 세계를 둘러보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모습까지 전망해
보는 흐름을 바탕으로 하였다. 또한 '과학사 X파일'의 주 독자가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이었던 점을 감안해 이번에도 가급적이면 쉬운 문장과 재미있는 내용
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하였다. 아무쪼록 이 책이 과학적 상상력의 향상, 첨단 과
학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습득, 그리고 올바른 과학적 세계관의 정립이라는, 필
자의 소망들을 잘 이뤄낼 수 있기를 바란다.

 

흔히들 SF(공상 과학) 소설은 미래의 과학을 예측하는 훌륭한 수단이라고도
하는데, 이 책의 [1부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는 여러 SF 소설이나 영화 속에
비친 과학의 모습들을 조명하는 글들로 구성하였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상상력
이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에 걸쳐서 지금까지 어떻게 현실화되어 왔는지를 흥미
있게 돌아보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을 접할 수 있다.
단순히 SF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그와 관련된 과학기술들을 기술한 경우도 있
지만, 대부분 SF와 현실을 비교해 가면서 조심스럽게 과학과 미래 사회를 비춰
보려고 노력하였다. 여기에는 생명 복제, 외계인, 대량 멸종 사태, 가상현실 등
SF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또한 SF의 역할을 단순히
현재와 미래의 첨단 과학기술들을 예측하는 데에만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과학
과 인간의 존재를 둘러싼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면서 미래의 사
회상에 대해 심오하게 성찰해 본다는 측면에서도 의미를 부여하였다.
[2부]와 [3부]는 첨단 과학기술과 미래 사회에 대해 분야별로 상세히 살펴보
는 글들로 구성하였다. 미래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의 첨단 과학기술들이 우
리 앞에 선보이게 될지, 그것들이 미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그리
고 이처럼 변모될 미래 사회에 대비하여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
해 기술하였다.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에 걸쳐서 과거, 현재, 미래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한 눈에 통찰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2부 우리가 살고 있는 미래 Ⅰ]에서는 인터넷과 이동통신, 나노 기술,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비롯한 생명공학의 여러 분야, 컴퓨터와 로봇 등 주로 미시적
인 과학기술 분야를 조명한다. 여기에는 최근 정부 차원에서 밝힌 중점 육성 분
야에 포함된 IT(정보 기술), BT(생명 기술), NT(나노 기술) 등을 비롯해서, 국
내외 전문가들이 21세기에 각광 받을 미래의 과학기술이라 일컫는 분야들이 많
다. 이처럼 과학기술 분야들을 인위적으로 구분한다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인류의 미래에 중대하고도 구조적인 변혁을 몰고 올 것으로
예측되는 부문들임에는 틀림없다.
[3부 우리가 살고 있는 미래 Ⅱ]는 카오스 과학과 레이저, 신소재와 플라스
틱, 대체 에너지 등 물리학과 화학에 가까운 여러 분야들, 그리고 교통, 기상,
우주, 해양 등 주로 거시적인 과학기술 분야를 다룬다. 앞 편들에 비해서 그다
지 화려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매우 중요한 과학기술 분야들이며,
장래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직결되는 부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지금까지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나 세부적인 지식이 별로 없었던 독
자들이라 할지라도,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수많은 첨단 과학기술들이 구체적으
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현재와 미래 사회에 어떤 영향과 변화를 몰고 올
지에 대해 개략적인 이해를 제공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필자가 과학기술의 거
의 전 분야에 걸쳐서 두루 살펴보려고 애쓰기는 했지만, [2부]와 [3부]에서 거
론하지 못한 첨단 과학기술들도 물론 많이 있다. 그것들에 관해서는 여러 사정
상 싣지 못했을 뿐이며, 결코 발전 정도나 중요성이 낮기 때문은 아님을 밝혀
둔다.  


[4부 과학은 어디로 가는가?]에서는 과학기술의 세부적 내용보다는 그것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와 관련하여 여러 측면에서 필자 나름대로 분석해 본 글들
로 구성하였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따로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의 다른 여러 부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그 영향력과 상호작용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따라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법률 등 과학 외적인 여러 요소들이 과
학기술에 어떻게 투영되며, 서로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미래 사회에 변화
를 일으킬지 진단해 보는 일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할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는 앞의 글들과는 다소 다른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현실 위에 좀
더 발을 딛고서 문제들을 바라보는 태도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특히 대부분의 국가에서 과학기술이 경제 발전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요소로 자리 잡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어떠한
과학기술 행정과 정책적 고려가 필요할지를 제시해 보았다. 또한 지금도 분쟁이
적지 않지만 미래에는 더욱 큰 사회적 논쟁거리로 대두될 과학기술과 지적 재
산권 문제에 대하여 인터넷과 생명과학 분야를 대표적인 예로 들어서 살펴보았
다. 기술 표준 문제, 북한과학기술과의 접목 등도 역시 앞으로 지속적으로 관심
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이슈들로서 아울러 검토해 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주목을
끌었던 과학기술과 관련된 시사적 문제들 및 기타 주제들에 대한 필자의 생각
을 담은 에세이적 성격의 글들도 상당수 포함시켰다.
[4부]의 글들은 관련 분야의 지식뿐 아니라, 학부와 대학원에서 과학을 전공
한 후 민간 대기업과 벤처 기업의 연구 개발에 몸담으면서 경험해 온 필자 개
인의 오랜 고민과 문제의식, 그리고 여러 과학기술인들의 생생한 실제 사례를
토대로 하여 쓴 글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현주소는 어떠한지,
근래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과연
어디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근원적인 해결책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으리라 생
각된다. 또한 필자가 지적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과학기술자, 다른 분야의 지식
인이나 관료, 일반 대중들도 다 함께 허심탄회하게 되돌아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필자가 많은 분들의 도움과 성원에 힘입어 다시 두 번째
책을 펴내기에 이르렀다. 여러 신문과 잡지를 비롯하여 그동안 필자에게 지면을
할애해 준 분들께 감사드리며, 필자의 글들을 관심 있게 읽어준 독자 여러분께
도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또한 필자가 운영위원으로 몸담고 있는 사단법인
<21세기 프론티어>와 대표 운영자를 지낸 바 있는 천리안 과학 동호회 <과학
그린비> 등 온라인 커뮤니티의 독자들,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성원해 주신 선
후배 제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처음부터 이 책의 방향을 잡아주고 편집, 교정의 전 과정에서 많은 수고를 해
준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여러분께도 감사드리며, 늘 곁에서 묵묵히 지켜준 아내
에게도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이제 네 살이 넘은 승완이가 아빠의 생각과
글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될 날이 곧 오기를 바라며, 개인적으로는 옛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끝으로 필자의 어린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뒤에서 온갖 헌신과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어머님께 작은 선물로 이 책을 바친다.             
                            
 
2002년 7월

  
봉천동에서

 
최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