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대중화, 무엇이 문제인가?
[업그레이드-기고] 과학 대중화, 무엇이 문제인가?
과학 평론가 최성우 ... 애정 어린 관심 급선무
요즘 들어서 과학의 대중화 문제가 과학기술계 안팎에서 상당한 화두가 되
고 있다.
최근 들어서 커다란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된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갖가지 대책에도 불구하고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깊어져만 가고 과학기술계
전반의 위기상황이 고조된 상황에서, 아무래도 그 해법은 '과학의 대중화'
에 있지 않겠느냐는 공감대가 나름대로 형성된 듯하다.
4월인 과학의 달을 맞이하여 이와 관련된 온갖 행사와 공연, 이벤트 등이
줄을 잇고 있으며, 물론 그 중에는 해마다 되풀이되어 온 일과성 요식행위
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양적으로 볼 때 크게 늘어나고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역대 정권의 대표적 실패작-과학대중화
그러나 과학의 대중화를 강조하는 모습들이 전혀 새롭게 보이지도 않고,
새삼스런 느낌마저 없지 않다. 예전에도 역대 정권, 과학기술부, 관련 단체
등에서 요란하게 소리 높여 왔으나 아직까지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실
패를 거듭해 온 것이 바로 과학의 대중화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대중화,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영국의 작가이자 과학자였던 스노우(C. P. Snow)는 1959년에 '두 문화
(Two Cultures)'라는 책을 통하여,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라는 두 학
문분야의 괴리와 그로 인한 상호 몰이해, 부작용 등에 대해서 경고한 바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러한 괴리와 장벽, 그로 인한 폐해가 가장 극심하
게 나타나는 데가 바로 우리나라가 아닌가 싶다. 거기에 예로부터 '사농공
상'으로 표현되는 과학기술천시 풍조가 아직까지도 기승을 부리는 현실 또
한 문제의 근원에 겹쳐진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에 필자가 공동대표로 몸담고 있는 과학기술인 단체인 '한국과학기
술인연합'(http://www.scieng.net)의 공개게시판에, "왜 우리나라에는 과학
기술을 쉽게 풀어서 설명한 대중적인 과학기술 도서가 거의 없느냐? 과학
기술자들이 자기네들끼리만 얘기할 뿐 대중들을 이해시킬 노력을 하지 않
으니 지금과 같은 이공계 기피가 온 것이 아니냐?"고 이공인들을 질타하면
서 과학의 대중화에 관한 책임을 묻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갈만한 이야기였다. 사실 대부분
의 과학기술인들이 그 동안 자신의 연구개발 활동에만 매몰되어 왔을 뿐,
보다 사회와 소통하고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은 사실이며, 스스로 반성해야할 일이기도 하다.
과학대중화 활동은 '赤字'...대중 외면으로 보람 느끼기 어려워
그러나 과연 과학기술인들의 책임만으로 돌릴 문제일까? 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작업들이 나름대로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안팎으로 정립
되어 있고, 거기에 보람을 느낄만한 상황이라면 과학기술인들이 왜 다투어
나서지 않겠는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서 좀 미안하지만 필자의 경우를 잠시 언급하자면,
그 동안 민간기업의 연구개발 현장에서 무척 쫓기며 일하는 와중에서도 과
학의 대중화에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부족하나마 두 권의 교양과학 서
적을 써낸 바 있다. 그나마 교양과학 관련 베스트셀러에도 오르내리고 청
소년 권장 추천도서 등으로도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인건비'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경제적 보상은 제쳐놓더라도, 과연 무엇을 위하여 그
동안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했는지, 앞으로도 이런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필자 스스로도 회의가 들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
다.
대중적인 과학저술가나 평론가로 활동해 온 이들이 손 꼽을 정도로 몇 안
되는 현실에서, 다른 분들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동안 여러 권
의 교양과학 저서와 TV강의 등으로 잘 알려진 자연과학 전공 교수 한 분
도, 그간 과학의 대중화에 상당한 기여를 해 왔다는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신의 전공 분야 연구업적과 위상에 거의 도움이 안되는 현실에
서, 더 이상의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기는 어렵다고 고백한 바 있다. 최근
여러 대중매체에서 '스타 과학자'로 떠오른 젊은 과학저술가 역시 자신의
저서가 전공의 커리어에는 별로 힘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 어려움을 토로하
기도 하였다.
대중화 활동 평가, 지원 시스템 마련돼야
적지않게 공들인 교양과학서적들이 얄팍한 처세술이나 재테크에 관해 써
놓은 책들에 비해 몇 분의 일도 관심을 끌지 못하는 우리의 천박한 독서풍
토와 일반의 수준도 문제이겠거니와, 그나마 사명감을 가지고 과학대중화
를 위해 노력하려는 전문가들에게 과학기술 연구개발 업적 못지않게 그 가
치를 인정하고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여전히 미흡한 것은 커다란 문제
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학의 대중화가 모든 이공계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인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자'들을 사회, 경제적으로
제대로 대우해 줄 생각은 안하면서 과학의 대중화만 외친들 실질적으로 무
슨 효과가 있겠는가? 청소년들에게 쉽고 재미있는 과학을 부쩍 강조하려는
최근의 움직임이, 만약 어린 학생들을 꼬드겨서 그저 이공계 대학으로 보
다 많이 진학시키려는데에만 급급하려는 목적이라면 이는 과학대중화의 참
뜻을 왜곡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부질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최우수
학생들이 의대, 법대로 거의 싹쓸이하듯 몰려가는 현실이, 의학이나 법학이
라는 학문은 쉽고 재미가 있거나 '의학의 대중화, 법학의 대중화'가 잘 되
어 있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오피니언 리더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 선행돼야
선진국에서도 과학, 공학 분야의 학문이 어렵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며, 일
반 대중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 역시 전문가의 수준과는 상당한 격차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우리와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그 어렵고
힘든 학문을 한 과학기술자들에게 그에 걸맞는 경제적 대우를 해 주고 사
회적으로도 존경을 보낼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잘 알고서 청소년이 아닌 '어른'들도 과학에 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꾸
준히 관심을 보인다는 점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과학의 대중화에
앞서서, 정부 관료 및 사회지도층부터 스스로 과학 마인드를 갖추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로 보인다. 과학기술에 대한 무지를 부끄럽게 여기기는커녕
때로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해괴한 풍조마저 없지 않은 정치인, 관료,
언론인, 기타 사회지도층이 국민들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정부부터 이공계 출신들을 차별대우
하지 않고, 과학적 마인드와 과학기술자들을 존중하는 데에 앞장서지 않는
다면, 과학의 대중화니 제2과학기술입국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또 다시 헛
된 구호와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글=최성우 (과학평론가, 한국과학기술인연합(scieng) 공동대표)
저서 :'과학사 X파일','상상은 미래를 부른다' 등
출처 : 대덕넷 2003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