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인 정책 참여, 국가 발전 좌우한다”
참여 정부 들어서서 자주 듣게 되는 용어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거버넌스(Governance)’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거버넌스가 기존의 ‘거번먼트(Government)’와 어떻게 다른지, 명확한 사회과학적·행정학적 의미는 무엇인지 규정하기가 쉽지 않고 여러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거버넌스에도 여러 가지 측면이 존재하겠지만 대략 민관협치(民官協治), 네트워크와 유기적 시스템의 강조 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예전과는 달라진 정부의 역할 및 기능과 관련하여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버넌스가 강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민간 부문의 정책 참여 역시 점증하는 추세이다. 꼭 거버넌스라는 개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문화예술계, 교육계, 보건의료계 등 각계각층에서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의 정책 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유독 과학기술계 만큼은 다른 부문들에 비해 국가 정책 참여가 현저하게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실 과학기술 분야야말로 고도의 전문성은 물론 발전 속도가 대단히 빠르기 때문에 전문가와 현장의 정책 참여가 가장 절실히 요구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제일 뒤떨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나라의 장래와 국가 발전을 위해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정부와 과학기술인들이 함께 반성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 과학기술인들이 국가 정책에 합리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며 구체적인 방안은 어떻게 마련되어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참여정부 다양한 정책 참여 활로 개척
물론 참여 정부 들어서 정부도 나름대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온 것이 사실이다. 작년 7월에 과학기술중심사회 추진기획단과 과학기술부가 발표한 ‘국가기술혁신체계(NIS) 구축 방안’에 나오는 여러 과제를 통하여 현장 과학기술인들의 요구와 주장을 수용하려 했다. 또한 이공계 전공자의 공직 진출 확대를 꾀하고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새로 발족시켜 민간 개방성을 늘린 것은 분명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을만하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도리어 이전보다 퇴보하거나 과학기술인의 정책 참여라는 관점에서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산업기술유출방지에 관한 법안의 제정이 추진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법안의 근본 취지와 필요성 여부 등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으니 길게 거론하지 않겠다. 하지만 국가의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에도 크게 관련된 중차대한 일이 과학기술인에 대한 인권 침해 및 연구개발 현장의 위축 등을 우려하는 과학기술계의 입장을 거의 무시한 채 강행되어 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법안을 추진하는 당사자들이 과학기술의 성격에 대한 기본적 이해마저 결여한 채 NIS의 취지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법안을 무리하게 강행하려 했다는 점은 참으로 놀랍고도 해괴한 일이다.
직무발명제도에 관련된 법안의 개선 과정에서도 역시 비슷한 문제들이 노출된 바 있다. 물론 경영계 등 다른 당사자의 입장과 국가 산업발전 전반을 고려해야 하므로 일방적으로 과학기술인들에게 유리한 주장만을 강변할 수는 없는 일이고, 과학기술계도 개정안에 합의한 마당에 뒤늦게 뒷북을 치면서 이의제기를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필자가 직접 겪은 바에 의하면, 논의 과정에서 담당 정부부처인 특허청의 고위 당국자조차 이 나라 과학기술인들의 처지와 직무발명보상제도의 근본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현장 과학기술인의 적극적인 참여 요구돼
하지만 언제까지 남의 탓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지금껏 과학기술인들의 정책 참여가 저조했던 데에는 과학기술인들 스스로의 책임도 컸음을 주지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국가 정책에의 참여와 합리적 방안의 제시를 위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과학기술계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이론과 논문이 쏟아져 나오는 곳이며, 과학기술인들의 상황상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대외적인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또한 신문, 방송 등에 자주 이름과 얼굴을 비치거나 대외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과학기술인들에 대해 예전에는 과학기술계 내부에서조차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장 과학기술인들의 정책 참여는 일부 과학기술인들의 개인적 입신양명 차원에서 바라볼 성질의 것이 전혀 아니다. 바로 개인이 아닌 전체 과학기술인들을 위하고, 나아가서는 과학기술계의 발전뿐만 아니라 국가의 장래를 결정한다는 차원에서 과학기술인들의 분발이 가일층 요구된다고 하겠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2005. 9 과총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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