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 바이러스와의 전쟁
한때 잠잠해진 것으로 여겨졌던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INI) 환자가 우리나라에서만 벌써 900명을 넘어서면서, 정부 당국도 위기 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로 한 단계 올렸다고 한다. 인간에게 온갖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세균 등은 위험하고 골치 아픈 존재일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와 세균이 크게 창궐하여 인류가 거의 절멸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큰 피해를 본 적도 적지 않다.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는 페스트가 중세 이후 유럽에서 가끔씩 대유행할 때에는, 갑자기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줄어든 나라들도 있을 정도로 엄청난 희생자를 낸 바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8년에 창궐한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사망자가 5000만 명 정도까지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쟁으로 죽은 사람보다 훨씬 많은 희생자를 낳은 최악의 전염병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바이러스와 세균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을 거의 다 죽게 만드는 것이 과연 그들에게도 유리할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숙주인 인간이 모두 죽어서 더 이상 기생하여 살 곳이 없어진다면, 그들 또한 공멸할 수밖에 없다.
영화 ‘아웃 브레이크’의 소재로도 등장했던 에볼라 바이러스는 감염자의 90% 정도가 일주일 이내에 출혈로 사망하는 가공할 전염병을 일으키지만, 도리어 너무 높은 치사율 때문에 널리 확산되지는 못한다.
발견 초기에만 해도 ‘신의 형벌’이라 불리며 극심한 공포의 대상이었던 에이즈 바이러스는, 이제는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은 만성 질환의 하나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치료 방법 등이 발달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에이즈 바이러스 역시 자신들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들이 인간을 너무 많이 죽게 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똑똑하지(?) 못하거나, 바이러스와 세균들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 등으로 전혀 새로운 무기를 갖춘 신종이 출현했을 때는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 미처 면역력과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 인류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는데, 페스트나 스페인 독감 등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최근에는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들이 늘면서 인류에게 더 큰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동물로부터 감염되는 전염병은 이미 200가지가 넘는 것으로 분류된다. 몇 년 전부터 빈발하는 조류 인플루엔자는 스페인 독감과의 관련성 때문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돼지 인플루엔자로 불리다 명칭이 바뀌기는 했지만, 신종 플루 역시 사람·조류·돼지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이 유전자적으로 결합된 것이다. 이들이 다시 변이를 일으켜서, 현재의 신종 플루보다 더욱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바이러스·세균과 인류의 전쟁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생물학적 대상은 아니지만, 컴퓨터 바이러스와 치료 백신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지루한 전쟁에서 어느 쪽이든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기는 힘들겠지만, 인류로서는 항상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중앙일보] 2009.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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